텃밭과 노인복지

현천호
2020-08-25

부산일보



이병국 부국장 겸 편집부장


고향에 혼자 계시는 모친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상한 곳에서 등기 우편이 왔는데, 국유재산 변상 조치와 강제 집행을 한다더라, 큰일이다.”


듣고 나니 짐작이 갔다. 고향 집 담 너머에 있는 15평 남짓한 텃밭 이야기였다.

모친께서 애지중지 가꾸는 이 텃밭은 불행히도 국유지다. 

등기를 보낸 ‘이상한 곳’은 국유지를 관리하는 ‘캠코’였고, 5년 주기로 경작 계약을 하니 

수수료를 내고 ‘국유지 대부계약’을 다시 하라는 내용이었다. 

1년에 1만 5930원, 5년치 7만 9650원을 폰뱅킹 처리하고 전화를 드렸다. 

“이제 아무 걱정 마시고 텃밭을 가꿔도 됩니다.” “다행이다, 땅 뺏기는 줄 알았다….” 전화기로 전해지는 

목소리가 최근 들어 가장 평온하게 들렸다. 이렇게 ‘이상한 등기 우편’ 소동은 마무리가 됐다.

팔순 모친에게 15평짜리 텃밭의 의미는 남다르다.

수십 년간 가꿔온 정도 있겠지만 고추와 배추 상추 등 여러 작물에 정성스런 손길을 주면서 당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래서인지 모친의 텃밭에서 크는 작물들은 유독 튼실하게 열매를 맺고 잎사귀도 늘 풍성하다. 

노인복지의 궁극적 목적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라면 모친의 텃밭은

 ‘노인복지의 실현 현장’이다. 

그러나 찜통 날씨에도 멈추지 않는 모친의 텃밭 사랑은 자식 된 입장에서는 항상 달갑지만은 않다.

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의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7년에 고령사회로 접어들었고,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는 전망이다. 

특히 농촌지역 인구 고령화는 더욱 빨라서, 고향 밀양의 경우 65세 이상 인구가 26%를 넘어 

2017년 말에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농촌 지역의 초고령사회 가속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경상남도의 경우 12개 시군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합천, 남해, 의령, 산청, 하동, 함양 등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30%를 넘어선다.

초고령사회 진입은 단순한 인구 통계적 문제가 아니다.

고독과 만성질병, 빈곤 해결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정책과제로 떠올랐다. 

초고령사회 노인복지는 지역 공동체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농촌지역 경로당 복지기능 강화 조치를 복지부에 권고했다.

농촌 노인 돌봄 서비스 확대를 위해 경로당의 지역 간 편차를 없애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자는 목적이다. 

농촌지역에서 경로당의 역할은 상당하다. 

평생교육 프로그램 운영과 건강관리, 치매 예방교육 등도 경로당에서 진행된다. 

동네 노인들이 심심풀이 화투나 치며 쉬던 공간에서 노인복지 서비스의 핵심 시설로 자리 잡았다.

농촌지역 노인들의 경우 혼자 생활하는 노인이 상당수다.

여러 이유로 자식과 떨어져 생활한다. 모친의 경우도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해’ 혼자 지내신다. 

주말이면 자식들이 번갈아 방문하지만 불안감은 항상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의 노인 돌봄 서비스와 

경로당 복지 확대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수개월 전부터 고향 집 창문에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다.

스티커에는 전담 사회복지사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방문하여 모친 안부도 

확인하고 간단한 일거리도 해결해 주는 고마운 분들이다. 얼마 전엔 복지사와 동행한 ‘생활지원사’가 

읍내까지 나가 일을 도와 드렸다는 말을 듣고는 감동했다. 

시청에 알아보니 예산을 지원받아 서비스를 대행하는 ‘노인통합지원센터’였다. 

지자체와 연계한 복지 기관의 활동은 ‘혼자 사는 노인’의 자식들에게 위안과 미안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예전엔 생각도 하지 못한 ‘복지 혜택’이다.

초고령사회를 앞둔 정부의 할 일은 무엇일까?

국가의 성장 잠재력 확보와 노인복지 예산 확대 지출에 상당한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들의 체감은 달라졌다. 

최근 들어 더욱 다양해진 노인복지 서비스는 ‘세금 내고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한다.

일자리 만들기와 치매안심센터 운영, 통합건강증진 사업, 한글교실 등 노인들을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농촌지역 노인들의 경우 한동네에서 수십 년 거주한 분들이 대부분이다. 

수혜자 입장에서의 복지서비스 확대가 필요한 이유다. 집 주위에 있는 시설이 ‘복지 현장’이 돼야 한다.

경로당과 텃밭처럼 ‘평온한 환경’이 노인복지의 첫걸음이다.

익숙한 지역사회 내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주거, 의료, 요양 등 ‘통합 돌봄’을 하는 

‘커뮤니티케어’의 확대 시행이 불가피하다. 복지는 국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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