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섯 번째...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습관처럼 떠오르는 이 문장은 나에게는 지속적으로 마음을 무겁게 하는 말인 것 같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지쳐있던 여름을 보내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던 찰나에 ‘독서’라는 또 다른 짐을 지어주는 것 같아서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가을은 서늘해진 날씨와 낭만적인 풍경들로 책과 함께 사색의 시간을 가지기에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코스모스가 피면 꽃구경을 가야하고 낙엽이 지면 단풍놀이를 가야하니 도무지 ‘독서’를 할 짬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책 한 권이 눈이 들어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단순한 일상의 반복 속에 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꼬집는 듯 한 강렬한 제목의 이 책으로 나의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체코 출신의 작가인 <밀란 쿤데라>의 소설인 만큼 소련의 침공으로 탄압받는 체코의 프라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사의 상처라는 무게에 짓눌려 한번도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지 못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네 남녀의 사랑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작품으로 사랑에 관한 철학적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제목부터 굉장히 의미심장해서 막상 읽기에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스토리를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다. 특히, <밀란 쿤데라>는 유명한 작가일 뿐 아니라 피아니스트와 영화감독으로 활동할 만큼 다재다능해서 그의 작품 속에는 신화, 예술, 역사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지적인 역량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독특한 관점과 화술은 요즘 가장 인기있는 작가 중 한명인 <알랭 드 보통>을 떠올리게 한다. 개성있는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 더욱 편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이 펼치는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랑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이다. <토마시>는 외과의사이며 자유주의자로 특별한 여성편력의 소유자이다. 그에게는 애인인 화가 <사비나>가 있지만 운명처럼 만나게 된 카페의 여종업원 <테레자>와 결혼하게 된다. <토마시>는 결혼 후에도 <사비나>와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고 여성편력도 지속된다. 이러한 <토마시>를 바라보는 아내 <테레자>는 그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인내한다. <사비나>는 공산치하의 프라하를 떠나 제네바로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유부남 대학교수 <프란츠>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가 이혼을 불사하고 자신에게 다가오자 그를 멀리하게 되고 <프란츠>는 캄보디아에서 사고를 당해 죽게된다. <토마시>와 <테레자>도 <사비나>를 따라 제네바로 가지만 그 곳에서 <테레자>는 방만하고 가벼운 <토마시>를 견딜 수 없어 다시 프라하로 돌아간다. <토마시>는 또다시 <테레자>를 따라 프라하로 돌아가지만 그 둘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 둘은 프라하를 떠나 시골의 집단농장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물질적 풍요는 없지만 그 생활은 그들에게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 한편 <사비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화가 생활을 계속 하던 중 <테레자>와 <토마시>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결국 <토마시> <테레자> <프란츠>는 죽고 <사비나>만이 살아남았다.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그들의 삶을 드려다 보면 무언가 편안하지 않고 답답하다. 엇갈리는 관계들의 연속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까? <사비나>가 가벼움의 상징이라면 <테레자>는 무거움의 상징이다. <사비나>는 어떤 구속도 원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떠돌아다니지만 <테레자>는 <토마시>와의 만남을 필연에 의한 운명이라 여겼다. <토마시>도 가벼운 삶을 추구하며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테레자>를 만나면서 점점 무거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다면 가벼운 사랑과 무거운 사랑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토마시>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테레자>의 아픔과 고통에 기꺼이 공감 해 가는 순간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모습에서 그 사랑은 매우 무거웠지만 자유로워 보였다. <토마시>의 사랑이 가벼운 사랑에서 진중한 사랑으로 변한 것처럼 사랑의 무게는 언제나 변할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 것 이다. 그 대상은 누군가의 삶 혹은 개인의 존재 자체가 될 수도 있다. <밀란 쿤데라>는 우리의 삶이 그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언제나 왔다 갔다 하고 있다는 사실을 네 남녀의 사랑법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무거운 것이 좋은 것이고 가벼운 것이 나쁜 것이 아니듯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무게는 다르다. 그 무거움의 정도보다는 자유로움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더 이상 이런 수식어의 무거움에 짓눌리지 말자.
* 위의 글은 이전 지면신문에서 게재 되었던 내용임을 밝힙니다.
글쓴이 : 이미라
이미라씨는 밀양에 소재한 청학서점1,2호점 그리고 북카페을 운영하면서 문화적으로 척박한 지역에서 <다락방>이란 고전소설 읽기 모임을 통한 문학적 교류와 작가 초청, 지역의 차문화, 그리고 영화평론가 초청 영화상영등 행사를 기획해서 지역민들에게 문화의 긍정적 효과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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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습관처럼 떠오르는 이 문장은 나에게는 지속적으로 마음을 무겁게 하는 말인 것 같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지쳐있던 여름을 보내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던 찰나에 ‘독서’라는 또 다른 짐을 지어주는 것 같아서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가을은 서늘해진 날씨와 낭만적인 풍경들로 책과 함께 사색의 시간을 가지기에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코스모스가 피면 꽃구경을 가야하고 낙엽이 지면 단풍놀이를 가야하니 도무지 ‘독서’를 할 짬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책 한 권이 눈이 들어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단순한 일상의 반복 속에 건조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꼬집는 듯 한 강렬한 제목의 이 책으로 나의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체코 출신의 작가인 <밀란 쿤데라>의 소설인 만큼 소련의 침공으로 탄압받는 체코의 프라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사의 상처라는 무게에 짓눌려 한번도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지 못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네 남녀의 사랑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작품으로 사랑에 관한 철학적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제목부터 굉장히 의미심장해서 막상 읽기에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스토리를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다. 특히, <밀란 쿤데라>는 유명한 작가일 뿐 아니라 피아니스트와 영화감독으로 활동할 만큼 다재다능해서 그의 작품 속에는 신화, 예술, 역사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지적인 역량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독특한 관점과 화술은 요즘 가장 인기있는 작가 중 한명인 <알랭 드 보통>을 떠올리게 한다. 개성있는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 더욱 편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이 펼치는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랑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이다. <토마시>는 외과의사이며 자유주의자로 특별한 여성편력의 소유자이다. 그에게는 애인인 화가 <사비나>가 있지만 운명처럼 만나게 된 카페의 여종업원 <테레자>와 결혼하게 된다. <토마시>는 결혼 후에도 <사비나>와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고 여성편력도 지속된다. 이러한 <토마시>를 바라보는 아내 <테레자>는 그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인내한다. <사비나>는 공산치하의 프라하를 떠나 제네바로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유부남 대학교수 <프란츠>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가 이혼을 불사하고 자신에게 다가오자 그를 멀리하게 되고 <프란츠>는 캄보디아에서 사고를 당해 죽게된다. <토마시>와 <테레자>도 <사비나>를 따라 제네바로 가지만 그 곳에서 <테레자>는 방만하고 가벼운 <토마시>를 견딜 수 없어 다시 프라하로 돌아간다. <토마시>는 또다시 <테레자>를 따라 프라하로 돌아가지만 그 둘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 둘은 프라하를 떠나 시골의 집단농장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물질적 풍요는 없지만 그 생활은 그들에게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 한편 <사비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화가 생활을 계속 하던 중 <테레자>와 <토마시>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결국 <토마시> <테레자> <프란츠>는 죽고 <사비나>만이 살아남았다.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그들의 삶을 드려다 보면 무언가 편안하지 않고 답답하다. 엇갈리는 관계들의 연속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을까? <사비나>가 가벼움의 상징이라면 <테레자>는 무거움의 상징이다. <사비나>는 어떤 구속도 원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떠돌아다니지만 <테레자>는 <토마시>와의 만남을 필연에 의한 운명이라 여겼다. <토마시>도 가벼운 삶을 추구하며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테레자>를 만나면서 점점 무거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다면 가벼운 사랑과 무거운 사랑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토마시>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테레자>의 아픔과 고통에 기꺼이 공감 해 가는 순간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모습에서 그 사랑은 매우 무거웠지만 자유로워 보였다. <토마시>의 사랑이 가벼운 사랑에서 진중한 사랑으로 변한 것처럼 사랑의 무게는 언제나 변할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 것 이다. 그 대상은 누군가의 삶 혹은 개인의 존재 자체가 될 수도 있다. <밀란 쿤데라>는 우리의 삶이 그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언제나 왔다 갔다 하고 있다는 사실을 네 남녀의 사랑법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무거운 것이 좋은 것이고 가벼운 것이 나쁜 것이 아니듯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무게는 다르다. 그 무거움의 정도보다는 자유로움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더 이상 이런 수식어의 무거움에 짓눌리지 말자.
* 위의 글은 이전 지면신문에서 게재 되었던 내용임을 밝힙니다.
글쓴이 : 이미라
이미라씨는 밀양에 소재한 청학서점1,2호점 그리고 북카페을 운영하면서 문화적으로 척박한 지역에서 <다락방>이란 고전소설 읽기 모임을 통한 문학적 교류와 작가 초청, 지역의 차문화, 그리고 영화평론가 초청 영화상영등 행사를 기획해서 지역민들에게 문화의 긍정적 효과에 기여하고 있다.